정보 내 몸 안의 겸손한 슈퍼 히어로, 림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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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삿포르 댓글 0건 조회 990회 작성일 18-04-05 07:32본문
우리 몸 속 하수도에는 맨홀 뚜껑이 없다!
혈관과 림프관은 우리 몸의 매우 중요한 수송로다. 혈관은 상수도, 림프관은 하수도에 비유할 수 있다. 몸 구석구석 닿지 않은 곳이 없고, 돌보지 않는 곳도 없다. 생명을 유지하는 통로라 할 수 있다. 고대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를 비롯해서 중세 과학자들은 림프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17세기 현미경의 발전으로 림프관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된 후에도 스포트라이트는 혈관의 몫이었다. 주목받지 못했던 림프관이 매우 중요한 조직임이 알려지고, 비밀이 속속 밝혀지게 된 것은 채 20년이 되지 않는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몸 속 노폐물과 병원균을 묵묵히 처리하는 겸손한 슈퍼히어로 림프관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 몸의 하수도 시스템 림프관
림프관의 첫 임무는 뒤처리다. 두근두근!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은 당당한 소리를 내며 대동맥을 질주해 모세혈관으로 내달린다. 심장에서 나온 혈액은 큰 동맥을 거쳐 점차 압력과 속도를 줄이며 각 장기의 모세혈관에 이른다. 혈액은 교환을 주 업무로 하는 모세혈관에서 많은 물질들을 주고받는다.
이 때, 혈액의 일부(혈장 백혈구)가 모세혈관 밖으로 빠져 나간다. 주변 세포 사이로 흘러 들어간 이 액체를 세포간질액이라 부른다. 세포간질액은 세포를 적시며 영양소와 아미노산, 호르몬 등을 배달한다. 그리고 대사의 결과로 세포가 내놓은 폐기물들을 수거한다. 임무가 끝난 액체는 모세혈관 하류에서 다시 혈관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처음 혈관을 빠져나왔던 양만큼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림프관이 해결한다. 세포 사이사이 잎맥처럼 뻗치고 있는 모세 림프관을 통해 미처 흡수되지 못한 액체를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 때 모세림프관 끝, 숭숭 뚫린 구멍으로 노폐물과 바이러스, 백혈구 등이 함께 흘러 들어간다. 이 액체가 림프다. 혈액이 흐르면서 남기는 흔적을 지우는 일종의 청소부인 셈이다.
정리하면 혈액의 성분인 혈장과 세포간질액(세포와 세포사이를 채우고 있는 액체), 림프의 구성 성분은 매우 비슷하다. 위치에 따라 이름이 달라질 뿐이다. 또 한 가지, 혈관은 심장-대동맥-세동맥-모세혈관-세정맥-대정맥-심장-폐동맥-폐-폐정맥-심장-대동맥…으로 무한 순환하는 폐쇄 순환계이다. 하지만 림프관은 처음과 끝이 분명하다. 모세혈관이 있는 세포들 사이에서 시작해 쇄골 근처 가슴림프관에서 대정맥으로 림프액을 돌려보내며 끝난다.
같은 듯 같지 않은 혈관과 림프관
동맥, 정맥과 림프관, 모세혈관과 모세림프관의 구조는 얼핏 보면 수송관처럼 비슷하다. 림프관도 동맥이나 정맥처럼 속막, 중간막, 바깥막의 세 겹으로 되어 있다. 단 림프관은 세 겹의 경계가 얇고 뚜렷하지 않다. 모세림프관은 모세혈관처럼 한 겹의 내피세포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 VGEF-C와 신생혈관 성장 관여인자 Angiopoietin의 작용으로 분화하고 자란다는 점도 같다.
림프관은 1분에 5~8번 정도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림프액을 흐르게 한다. 림프관 곳곳에 있는 판막(이첨판막, bicuspid valve)이 림프관의 역류를 막는다. 즉, 모세림프관 쪽에서 가슴림프관 쪽으로 림프액을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흐름이 원활치 않으면 몸 여기저기가 붓는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오래 서 있었더니 다리가 부어서 부츠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중력 때문에 다리 쪽에 고인 림프액이 림프관의 수축 운동만으로는 위쪽으로 원활히 올라갈 수 없어 생긴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다리를 들어 올리거나 몸을 움직이거나 걷기만 해도 좋아질 수 있다.
“임파선과 림프절은 무슨 관계인가요?”
림프관에는 림프절이 있다. 혈관과 림프관에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림프절은 콩이나 매듭처럼 보이는데, 림프관에 군데군데 달려 있다. 임파선이라고도 부른다. 림프관과 림프절, 골수, 비장, 편도선, 림프액 등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 림프계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림프액은 세포 사이의 폐기물을 수거하고 운송한다. 그런데 이 폐기물엔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들을 그냥 운송하다가는 감염 등 큰 말썽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통과하는 곳이 림프절이다. 림프절은 우리 몸의 폐기물 전처리 시설인 셈이다.
림프절은 외부에 노출된 곳과 연결부위에 특히 많이 분포한다. 머리와 몸이 연결된 곳인 목, 팔과 몸이 연결된 곳인 겨드랑이, 다리와 몸이 연결된 가랑이에 몰려있다. 몸에서 돌출되거나 연결된 부위에 특히 많다. 크기는 깨보다 작은 1mm에서부터 콩만 한 1~2cm까지 다양하다.
얇은 피막으로 둘러싸인 림프절은 혈관으로부터 T림프구와 B림프구 등 면역세포를 공급받는다. 림프구들은 림프절 속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병원체들이 림프액에 잡혀서 끌려 들어오면 ‘반쯤 죽여 놓는다(아예 다 죽이기도 한다)’. 좀 센 놈들이 침입할 경우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결과로 피부랑 가까우면서 림프절들이 많이 모여 있는 귀 밑, 겨드랑이 등이 퉁퉁 붓는다. 림프구들의 전투로 인해 열이 나고 아파 고생하는 것이다.
마침내 밝혀진 암죽관의 비밀
림프절은 외부물질의 침입을 막는 역할에 맞게 외부와 연결된 소화기관에 특히 많다. 숨을 쉴 때는 먼지와 병원체가, 음식물을 먹을 때에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함께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소화기관인 장 주변에도 림프절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모세림프관 중 소장의 융모에 있는 것을 암죽관이라 한다. 소장에서 흡수한 영양분 중 분자가 작은 포도당이나 아미노산 등은 모세혈관으로 들어가지만 분자가 큰 지방이나 지용성 비타민은 암죽관으로 들어간다. 지방은 어떻게 융모 세포 사이를 헤치고 암죽관을 찾는 것일까? 국내 과학자들이 몇 해 전 비밀을 풀었다.1) 암죽관이 주변 수직 평활근의 움직임에 따라 자발적으로 수축 운동을 하며 영양소를 빨아들인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최근엔 장내 유익균이 암죽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도 밝혀냈다.
1) 고규영 교수(KAIST 의과학대학원 특훈교수, 現 IBS 혈관 연구단 단장)와 김필한 교수(KAIST 나노과학기술대학원)의 공동 연구(2015, 10)
이처럼 림프관은 혈관과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생명유지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혈관 대신 커다란 영양소인 지방 덩어리를 날라주기도 하고 세포가 만든 폐기물을 처리한다. 몸 안에 들어온 못된 병원체까지 묵묵히 싸워 퇴치한다. 이제야 빛을 보고 있는 림프관. 혈관의 아류가 아닌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
림프관은 어두컴컴한 새벽녘 도로를 깨끗이 청소하고 사라지는 고마운 환경미화원처럼 겸손한 슈퍼히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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